블로그를 만들기 위해 했던 ‘과정’ 그 자체가 그대로 콘텐츠가 된다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게 두 단계의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그다음에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거죠. ‘시스템 먼저, 콘텐츠 나중’이라는 순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커다란 벽에 부딪혔습니다. 작업을 멈추고 방금 한 일을 ‘문서화’하려고 할 때마다 맥이 툭툭 끊겼거든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는 완성된 시스템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튀어나온 아이디어와 실패한 프롬프트, 그리고 “아, 이거다!” 싶었던 순간들에 있다는 걸요.
발견: 과정이 곧 콘텐츠다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AI와 시드(seed)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대화하다 보니, 우리의 대화 자체가 이미 하나의 블로그 글이었습니다. 제가 비전을 설명하는 방식, 심링크(symlink)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과정, 어떤 아이디어가 실패했을 때 방향을 튼 이유들. 이런 것들은 단순한 ‘로그’가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작업이 끝난 뒤에 따로 시간을 내어 글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작업이 스스로를 기록하게 만들면 그만이었죠.
이 시리즈가 그 증거입니다
지금 읽고 계신 이 시리즈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이 글들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뚝딱 써 내려간 게 아닙니다.
- 블로그 시스템을 만들었고,
- 그 과정을 ‘시드(날것의 생각과 기록)‘로 남겼습니다.
- 그리고 그 시드들을 모아 이 글들을 구성했습니다.
- 결과적으로 이 글들이 블로그의 첫 콘텐츠가 되었죠.
이게 바로 **메타 재귀(Meta-recursion)**입니다. 콘텐츠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이 그 시스템의 첫 콘텐츠가 되는 구조죠. 이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설계였어요. 저는 초기 프롬프트에서 AI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업하는 동시에 이게 콘텐츠가 되기를 원한다"고요.
패러다임의 전환: 수동적 AI 협업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AI와 협업하는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seed-idea나 seed-prompt 같은 명령어를 제가 직접 입력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 방식은 여전히 번거로웠습니다. 생각의 흐름을 방해했거든요.
그래서 방식을 바꿨습니다. AI에게 이렇게 주문했습니다. “나는 아이디어를 내고 피드백을 줄 테니, 수확(harvest)은 네가 알아서 해.”
패러다임이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 저는 오직 문제 해결과 생각에만 집중합니다.
- AI는 대화의 흐름을 관찰하며 ‘시드’가 될 만한 부분을 찾아냅니다.
- 그리고 알아서 분류하고 저장합니다.
사람이 AI라는 도구를 써서 기록하는 게 아니라, AI가 사람의 작업 배경에서 지식을 수확하는 방식이 된 겁니다.
이 패턴이 적용되는 곳들
이런 방식은 블로그 글쓰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업무의 많은 부분에 적용할 수 있죠.
- 회의록: 사람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면 AI가 정리합니다. 회의 후에 따로 정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 코드 문서화: 코딩하는 과정을 AI가 지켜봅니다. 단순히 코드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짰는지 맥락을 기록합니다.
- 의사결정 로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 AI가 근거를 포착합니다. 3개월 뒤에 “우리가 왜 이렇게 했지?“라고 고민할 일이 사라집니다.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사람은 본업에 집중하고, AI는 배경에서 지식 자산을 수확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협업의 의미
우리는 보통 AI를 ‘명령을 내리면 답을 주는 도구’로 생각합니다.
- 질문한다.
- 답을 얻는다.
- 적용한다.
이건 전형적인 주종 관계의 도구 활용입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를 만들며 경험한 협업은 달랐다. AI는 제 사고의 흐름을 관찰하고, 제가 놓친 패턴을 발견하며, 작업의 ‘부산물’을 소중한 ‘자산’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이제 AI는 단순한 비서가 아니라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마치며: 시스템과 실천
세 편의 글을 통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 시작: 블로그를 만든 이유와 시드 시스템의 구조.
- 실패: 실수 속에서 배운 AI 활용의 기술.
- 발견: 작업이 콘텐츠가 되는 메타 재귀와 수동적 수확 패턴.
시스템은 갖춰졌습니다. 이제는 실천할 차례입니다. 매일 AI와 나누는 대화는 시드가 되고, 시드는 글이 되며, 글은 블로그를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도 AI와 협업하고 있다면, 억지로 ‘문서화’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대신 AI가 여러분의 과정을 기록하게 하세요. 휘발되기엔 너무나 아까운 아이디어들이 여러분의 대화창 속에 잠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AI와 협업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글에서 설명한 협업 패턴의 실제 사례이기도 합니다.
